낙엽이 내릴 때
시: 비전
그동안 참고 기다린 날들이
바람에 쓰라리게 흔들릴 때에는
붉고 누렇게 물든 모습이 차마 부질없으니
미련없이 후딱 가버리겠다고
그대는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네.
푸른 하늘은 서서히 노을을 품으며
서녘 강나루로 잦아들고
억새 하이얀 언덕에 하늬바람을 부르는
손짓들이 한없이 너울거릴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네,
그것이 이젠 헤어지자는 말이라는 것을 . . .
부슬부슬 비오는 저녁 어스름에
아직 갈길이 먼 나그네처럼
밤나무에서 느닷없이 떨어지는 알밤처럼
쌓이고 쌓인 정을 한꺼번에 툭툭 털고
기어이 가버릴 줄은 나는 정말 몰랐네.
달빛이 교교히 내리는 강변을 따라 걸으며
짙은 속삭임으로 발걸음이 점점 더뎌지고
가슴속 짓누르던 시름은 모두 강 저편으로
황포돗을 단 배에다 실어 보냈었지,
그리고 그 때엔 아무도 믿지 않았네.
우리가 헤어질 날이 오리라는 것을 . . .
오솔길 돌아들어 그 숲속에서
밤새도록 사랑을 불사르고
아침이슬이 촉촉이 내릴 때까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그 수많은 사랑의 언약과 영생(永生)의 노래를
소슬바람이 한순간에 휩쓸고 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네.
이 가을처럼 처량함만 남게 될 줄을 . . .
2006.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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