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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명 비전 등록날짜 2009-08-31 조회수 9475
    제 목   이릉초시

      
      몽구(蒙求)의 이릉초시(李陵初詩)를 읽으며,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에게 궁형(宮刑)이라는 비극적 체험을 
      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가 임안(任安)에게 보내는 글에서 [분토(糞土) 속에 처
      박힌 것 같은 현재를 참고 살아있는 것은 다만 마음속에 맹세한 것을 
      완성하지 못함이 원통해서이며, 이대로 죽어버림으로써 내 문장(文章)
      이 후세에 남지 못하게 될 것을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 
      그일, 즉, 이릉(李陵)의 전공과 인품을 들어 그의 투항(投降)을 변명하
      고자 나섰던 일로 무제(武帝)의 격노를 사서 치욕적인 거세형(去勢刑)
      을 당한 바로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여기에 나오는 이릉(李陵)입니
      다. 李民樹선생이 번역한 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 이릉초시(李陵初詩) 
      
      전한(前漢)의 이릉(李陵)의 자(字)는 소경(少卿)이니 전장군(前將軍: 
      전군의 장군) 이광(李廣)의 손자이다. 젊어서 시중건장감(侍中建章監)
      이 되었는데 말타고 활쏘기에 능했다. 겸손하여 초야(草野)에 있으면
      서 크게 명예를 얻었는데 무제(武帝)는 이광(李廣)의 풍도가 있다 하
      여 그를 기도위(騎都尉)에 임명했다. 천한(天漢) 2년에 보졸(步卒) 
      5천명을 거느리고 흉노(匈奴)를 치다가 싸움에 패하여 드디어 항복하
      게 되었다. 처음에 이릉이 소무(蘇武)와 함께 시중(侍中)이 되어 친분
      이 있었다.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간 이듬해에 이릉은 항복했다. 뒤
      에 소제(昭帝)가 황제의 지위에 서자 흉노와 화해했다. 소무는 한(漢)
      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 이릉이 시를 지어 송별(送別)하기를, 
      
      '손을잡고 다리에 오르니 
      노니는 사람들 저물게 어디로 가는가? 
      시냇길 가에 서성이면서, 
      사모하여 작별하지 못하네. 
      새벽 바람은 북쪽 숲에서 울고, 
      반딧불이는 동남쪽으로 날아가네. 
      뜬구름에 해가 천리인데, 
      어찌 내 마음 슬픈 것을 알랴?' 
      (携手上河梁 游子暮何之. 
      徘徊蹊路側 恨恨不得辭. 
      晨風鳴北林 燿燿東南飛. 
      浮雲日千里 安知我心悲.) 
      
      라고 하니, 소무는 이릉을 작별하는 시에 말하기를, 
      
      '쌍오리가 모두 북쪽으로 나는데, 
      한 오리는 홀로 남쪽으로 날아가네. 
      그대는 마땅히 이곳에 머물지만, 
      나는 응당 고향으로 돌아가리. 
      한번 헤어진곳이 먼 오랑케 땅인데, 
      만나보기가 어찌 끝이 있겠는가? 
      슬프게 간절한 회포에 
      눈물이 옷깃에 젖는 것을 깨닫지 못하네. 
      원컨대 그대는 길이 노력하여, 
      말하고 웃는 것을 서로 잊지 말게' 
      (雙鳧俱北飛 一鳧獨南翔. 
      子當留斯館 我當歸故鄕. 
      一別如秦胡 會見何渠央. 
      愴恨切中懷 不覺淚霑裳. 
      願子長努力 言笑莫相忘) 
      
      라고 했다. 오언시(五言詩)가 대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한사람(蘇武)은 사신으로 가서 18년동안 억류되었다가 돌아가는데, 
      한사람(李陵)은 흉노에게 항복하였기에 돌아가지 못하고 통탄하는 
      심정을 서로 노래한 것입니다. 이릉이 항복하게 된 경위도 부득이 
      하였기 때문에 사마천(司馬遷)은 그를 변호해주고 싶었던 것인데,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극형을 받고, 그로 인해 [사기(史記)]라는 
      영원불멸의 저서를 남기게 되었으니 역사(歷史)의 위대한 변전(變
      轉)이 이런 사건에서 시작됨을 보고 감탄하게 됩니다. 위에 두사람
      이 나눈 시(詩)가 오언시(五言詩)의 처음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
      다. 
      
      2002. 11. 30.
      비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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